On air14 사람 사이의 층층층 사람 사이는 얼마나 다층적인지! 연결되어온 시간만큼이나 그의 삶과 나의 삶이 뒤엉켜 겹겹이 쌓인 층이 빙 둘러보아도 시작도 끝도 알 수없게 뭉쳐있다. 한마디로 말하려니 어찌나 어려운지, 좋은 관계였다 하기에 마음 한 구석이 찝찝하고 좋지 않은 관계였다 하기에 마음 한 구석이 아리다. 글을 쓰고 말을 하는 것은 그 것이 불완전하게 표현되어도 괜찮다 할만큼 오래간 마음이 단정하게 빗질된 후인가 보다. 후두둑 후두둑 엉킨 머리칼이 한참 빠지고서야 말할 수 있겠다. 그런데 그때는 마음이 많이 아플 것 같다. 단정하고 윤이나는 머리칼만 한웅큼 남아, 빗질을 진작할걸 하고... 2016. 6. 10. 연민을 표현하는 것의 사치스러움 어떤 문제는 연민의 표현조차 사치스러워서 글과 말로 뱉기 주저하게 된다. 아픔이 진행되고 있을 때/ 어떻게 진행될지 끝을 알 수 없을 때 혹은 절망적인 끝이 우려될 때/ 사건에서 나보다 더 고통받는 존재가 있을 때 등등...말과 글이 사건과 독립적으로 어떤 환원된 의미와 감정을 생산하고, 그 환원물이 단편적 위로와 격려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이 거대한 진실에 비해 너무 초라해서 부질없이, 사치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 위로를 구하고 위로 받는 과정은 의미있는 것일까? 위로를 구할 마음조차 숨어버리는 어떤 문제가 생애 아주 가끔 있는 걸로 해두자.수능 언어영역 비문학 지문이 떠오른다(갑자기 이렇게 예전기억들이 불쑥불쑥 떠오를 때가 있다.). 대략, 감각은 절대로 공유될 수 없다는 얘기였다. 사과를 깨물어서.. 2016. 6. 8. 손열음과 어머니 왜 인터뷰를 읽는데 울컥울컥 눈물이 나지? http://me2.do/FoCUHLk3 2016. 5. 25. 직관적 깨달음 이면의 전제의 불편함 이를 테면 사람은 서울에서 살아야지, 시골에서는 꿈을 크게 가질 수 없어 라고 했다면 그 이면에는 예컨대 꿈이란 성취지향적인 목표를 말하는지 성취지향적 삶이 과연 행복인지 행복은 비교 가능한 것인지 등등의 수많은 전제에 대한 서로 다른 합의가 존재하므로 전제에 대한 부연을 생략한 직관적 깨달음을 말할 때에는 (웬만한 사이가 아니면) 뜻이 곡해되곤 한다. 주장이 조심스러워진다.(어떤 때에는 부연도 불가한 경우도 있다.) 2016. 3. 26. 이전 1 2 3 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