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혜화에 있을 정경화씨 바이올린독주회를 고대하며, 마음과 귀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아래 영상을 보았다.
요며칠 보다 분석적 태도로-이곡의 연주를 더 깊이 이해하고 싶은 마음으로, 기돈크레머, 하이페츠, 이작펄만, 힐러리한 등 다양한 연주자의 샤콘느를 들었다. 서로 다른 스타일을 비교하는건 차치하고서 나의 선호는 전적으로 정경화의 연주에 있는데-, 이를 언어로 표현할 길이 없다. 내 온 마음이 정경화씨와 바흐가 만든 아름다운 각에 딱 들어맞아 공명한다. 기돈크레머의 리드미컬하게 뚝뚝 끊어지는 연주는 샤콘느의 춤곡적 성질을 충실히 재현한 것일지 몰라도, 곡이 갖는 부인할 수 없는 영성(spirituality)을 가려버린 느낌이다. 기존의 이미지와 달리 하이페츠가 -매우 균질한(?) 연주를 보여주는 가운데- 얼마나 섬세한 연주자인지 느끼기도 하였다.
이곡의 화성은 장르를 초월하여 부인할 수 없는 영성으로 귀결되는 듯하다. 나약한 인간이 생의 무게를 짊어지고 자기몫의 생을 완성해나갈 때, 그 말미에 인간은 자연스레 신과(우주와, 자연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소통하는 영적존재가 되어간다. 한없이 나약하고 절망적인 동시에 순간 순간 더없이 강한 생명력과 집념을 드러내는 인간 생명의 힘이 느껴진다. 중후반 major조성부는 통상 굉장히 '인간적'으로 여겨지는 바흐음악에 신이 직접 개입한 순간같다. 나는 늘 바흐음악은 그 완벽함에도 불구하고, 신을 마주한 구도적 '인간'을 표상한다는 점에서 모차르트의 신적 무결함과 다르다고 얘기하는데, 샤콘느는 신과 인간의 보다 가까운 소통을 그린다 해두고 싶다.
정경화씨의 풍성한 중저음과, 아주 섬세한 비브라토, 한음 한음에 싣는 소리의 무게가 무척 멋지다. 젊은 시절 연주임에도 불구하고 이리도 깊이감있고 완성된 연주를 들려줄 수 있는지, 역시 내가 가장 사랑하는 바이올리니스트 답다. 한국에서 그녀 음악인생 후반의 연주를 라이브로 볼 수 있음에 감사한다. 내일 공연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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