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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정경화 - 바흐 독주회(20151124)

by 무대 2015. 11. 24.
20151124 정경화, 바흐 독주회.
* 수줍은, 당당한, 몹시 귀여우신, 카리스마 넘치는, 진실된, 즐거운
한층 더 여유로워진 거장의 성숙을 특별한 시간과 공간에서 마주했던 잊지못할 연주회이다.

해설이 있는 연주회였다. 악기 없이 양손을 수줍게 모아 숙인 환영인사로 시작된 연주회.
2012년 명동성당 <드디어 바흐다> 독주회 때는 E Major인 BWV 1006 으로 연주회를 끝낼 '용기가 없어' 마지막 곡인 1006을 제일 먼저 연주하셨다고. BWV 1004가 샤콘느라는 대곡으로 끝나기 때문에 특히 부담스러웠다(?)고 하셨는데, 오늘은 1004부터 시작하여 '더 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연주하겠다고 하신' 1006으로 마치셨다. 햇볕없는 독일에서 나고 자란 바흐가 비발디의 영향을 많이 받고 써서 '이탈리안 선샤인' 그 자체라 소개해주신 1006은 결코 가볍지도, 시시하지도 않은 무척 유쾌하고 충만한 마무리였다. 아주 사소한 부분일지라도 한층 더 자연스러운 완성으로 나아간 거장의 성숙이 3년새 전해진다.

초반의 담화는 주로 1004에 대한 설명이었는데 젊은 시절 샤콘느의 Major부가 본인에게 너무너무 영적으로 다가와서- 음 마치 신이..라고 말끝을 흐리셨다. "손은 안돌아가고 아주 정말 연주하느라 애썼다-" 하셨다. 공연전 샤콘느를 들으면서 생각하고 기록했던 Major파트에 대한 나의 의미부여와 같은 곳에 대한 의미부여이자 같은 묘사라 무척 설레었다. 시공간을 초월하여 이루어진 음악적 소통의 기담(그래서 정경화씨 연주가 그리도 좋았구나 하며, 두근두근했던 팬 1인)!

공연이 열렸던 재능아트센터는, 개관한지 얼마 안된 177석 규모의 소극장인데, '프리미엄' 소극장이라고 부르는게 적당하다. 이미 우리나라 제주도에 지니어스 로사이, 본태박물관 등을 남긴 건축가 안도 타다오의 작품이다. 듣기로는 음향에도 큰 신경을 썼다고 한다. 정말 작은 규모라, 연주자의 숨소리, 여린 소리를 낼 때 음 사이로 바이올린 활이 긁히는 소리, 줄간이동할 때 다른 줄을 튕기면서나는 약간의 배음까지 다 들렸다. 연주자의 표현이 이렇게 생생하게 전해진 공연은 처음이다. 어떤 공연이든 조금은 더 특별하게 만들어줄 흔치않은 장소였다.
정경화 선생님은 본인은 같은 곡을 공연장 등에 맞춰 매번 다른 해석으로 연주한다고 하신 뒤, 오늘 공연장에 대해, 정말 아름다운 공연장이죠? 그런데 바로크음악을 하기에는 acoustic이 dry해서 오늘은 여기 계신 여러분들만을 위한 버젼을 선물해 드릴 예정입니다- 고 하셨다. (박수) 공연을 다 보고 음향이 정말정말 dry하다고 느끼긴했다. 바로크 음악은 웅웅 거릴 정도의 성당에서 듣는 게 맛이라, 이정도 dry한 음향에서 나름의 바로크적 묘미를 살리시려고 많이 고민하셨겠구나 싶기도 했고-, 공연중 너무 dry한 점이 살짝 신경쓰이기도 했지만 또 굉장히 정직하게 들리는 맛이 있어 나름 좋았다. 

제일 처음 연주된 1004번은- 특히 마지막 악장 샤콘느는 보통의 속도보다 무척 빠르고 드라마틱했다. 좀처럼 울리지 않는 음향을 특성을 고려해 힘있는 소리를 채워넣는 연주같았다. 처음의 단음 부분- 레-미파-솔라-시-라 솔 파 솔-시라솔 파미- 이부분에서는 완전히 끊어 연주하셨는데(딱딱한 느낌의 스타카토가 아니라 한음 한음 U자를 그리는 연주랄까?) 이 또한 울림이 없어 어차피 다소 끊기는 점을 고려해 오히려 음간 간격을 부드럽게 의도한 듯 끊는 듯 잇는 느낌이기도 했다! 또 처음 곡설명에서, 본인이 어렸을 때에는 샤콘느의 베이스 박을 지키는 것에 굉장히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스승으로 부터 많은 강조를 받기도 하였는데- 지금은 조금 우습지만 뭐 어때!? 하는 마음이 든다고 하셨다. 템포를 마구잡이로 하겠다는 것으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균형잡힌 가운데 유드리있게 느끼는 대로 표현하겠다 하셨는데, 장조부 등에서 그 유연한 해석이 참 아름답게 다가왔던 것 같다(아직도 그 -라-음이 기억난다.)

여하튼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것은 무척이나 수줍게 즐겁게 달변가스럽지 '않게' 대화를 건네시다가 악기를 들고 곡이 시작되기 직전, 표정을 가다듬고, 눈빛을 가다듬고 놀라운 집중력으로 곡에 몰입하는 일흔의(예순 여덟이시다) 연주자의 모습이었다. 그 몰입하는 기운이 얼마나 대단한지. 나도 일흔 살이 되었을 때, 저런 눈빛으로 저런 집중력으로 무언가에 몰입할 수 있을까, 저렇게 자신의 색을 아름답고 강렬하게 뿜어낼 수 있을까 하며 몹시 감동받았다. 계단을 오르듯, 차곡차곡 무언가를 쌓아가는 BWV 1005를 지나 1006이 시작되기전, 오늘 저는 이곡을 정말 정말 즐겁게 연주할거에요! 하셨는데, 표정부터, 모션- 휘몰아친 템포, 경쾌한 리듬 어찌나 즐겁게 연주하시는 지 정말정말 신이 났다. 같이 갔던 ㅁㅎ이는 이 휘몰아치는 1006번이 너무나 좋았던 모양이었다.

앵콜은, 단선율의 'Amazing Grace'. 한 음 한 음에서 어찌나 본인이 전하고자하는 메시지를 강하게 담아내는지- 오늘 공연 중에서 가장 정경화씨의 마음이 전해졌던 곡이다. 짧고 수수한 선율 속에, 신에 대한 사랑과, 자신이 받은 축복에 대한 감사와,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꾹꾹 눌러담겼다. 끝음을 줄여가며, 활과 줄이 마주 긁히는 작은 쇳소리까지 완전히 멈추었을 때 진한 뒷여운이 남았다. 앵콜전 정경화씨는, 어렸을 때에는 꿈을 좇는 과정이 무지개를 좇는 일 처럼-, 언제나 무지개를 좇아가지만 도착했을 때마다 무지개는 늘 저만치 가있는 그런 것으로 느꼈다고 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줄리어드에서 연습을 하다 하늘을 보았을 때, 선명한 쌍무지개를 만나셨다고. 사소한 것 같지만 사람이 쉬이-할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이었고, 무척 감동받았다고 하셨다. 그러고선- "저에게는, 오늘 저녁 이렇게 나와서 여러분 앞에서 연주하는 이 순간이 꿈을 이룬 순간입니다. 매일매일의 이런 일상적 저녁이 제 꿈의 실현입니다- 감사합니다."로 공연을 맺었다.

p.s. 바흐 B단조 미사 를 꼭 들어보라하셨다. 젊었을 때 카라얀의 연주에 빠져 듣고 또 들었다며- 오늘 밤 드리는 또하나의 큰 선물이라며-

마무리는 공연장 근처의 맛있는 밀크티 한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