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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도+

강남역 살인사건, 조현병의 관점에서 -의학도 칼럼①

by 무대 2016. 5. 24.

SNS에서 친구 글에 긴 댓글을 달게 되어 블로그에 옮깁니다.  대화체 그대로 옮깁니다. 친구글은 이 사건의 본질에 대해서 균형있는 시각으로 숙고한 글이었고, 이에 더해 범인의 조현병 이력을 축소해석해서는 안된다는, 정말 끔찍하게도 생물학적인 원인으로 이 사건이 크게 영향받았을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글이었습니다.

아래 글은 <조현병과 범죄율에 대한 의학 연구들>에 관한 짧은 스터디와 약간의 의문입니다. 이번 사건의 본질에 대해서 파헤치는 글이라기 보다 사건에 대한 조현병 프레임의 타당성에 대해서 고민하는 글입니다. 자료를 찾고 해석하고 결론을 내리는 과정이 아직 많이 미숙하니 지나가시는 전문가 분들의 의견과 조언 항상 감사히 받겠습니다. (2016/05/21 작성)


사건 이후 이 사건에 대한 여러 사람들의 글을 보았어. 초반에는 이 사건에 여성혐오 프레임을 씌울 수 있느냐가 이슈였던 것 같아. 서로가 자신은 하나로 단언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도, 여성혐오와 범죄자 개인의 문제(주로 조현병 이력)라는 두 프레임이 마치 경쟁하는 듯 했어. 일부는 여성혐오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과정에서 사건의 다른 맥락에 대해 부정하려 했고 일부는 여성혐오 프레임 자체에 대한 거부반응으로 조현병 이력을 부각시키기도 했어. 그러다 보니 프레임의 결정이 사건의 본질인양 곡해되기도 했지.


'여성혐오'와 ‘조현병 이력의 범인’이라는 두 프레임은 병존 가능할 뿐만 각각 충분히 중요한 의미로 논의되어야 한다고 생각해. 또, 네 말처럼 사건의 본질은 현실 설명력 있는 프레임을 결정하는 것을 넘어서는 훨씬 이상이고. 하지만 조현병에 대해서는 보다 신중하게 알아보자는 생각으로 긴 글을 남길게.

개인적으로는 뇌 과학에 대해서는 축소도 확대 해석도 경계해야 하는 것 같아. 뇌에 마음의 자리가 있느냐, 정신이 결국 뉴런의 신경전달과정과 철저히 일대일로 대응되는 산물이냐의 문제는 과학계에서도 여전히 가치판단의 문제로 남아있어. 누구도 아직 증명할 수 없으니까! 물론 요새는 후자로 설명되는 영역이 훨씬 늘어난 것 같지만 말이야(물론 심리학적 현상과 생물학적 현상을 연관짓는 다른 차원의 아이디어도 가능하다고 생각해!)

아무튼, 네 글을 보고 궁금해서 조현병 환자의 범죄율(특히 살인이나 폭력 범죄에 대해서)에 대한 논문을 찾아봤어. 정말 많은 연구가 있어서 다 보진 못했고, 메타분석* 논문 하나를 보았어.
이 논문을 보면 조현병(기타 정신증 환자**를 합한 데이터) 환자의 폭력 범죄율이 분명 일반인구집단보다 높은데, 이게 조현병/정신증 + 물질남용이 같이 있어야만(under co-morbidity) 그렇대. 일반 물질남용 정신질환자에 조현병이라는 조건을 더해도 전혀 범죄율이 변하지 않더라는 거지(아주 깔끔하게 분리된 데이터는 없는 듯해)

* 메타분석; 여러 연구 데이터들을 하나로 합쳐서 다시 통계 분석한 논문이라, 논문 여러 개 읽는 거랑 비슷해!
**정신증; psychotic disorder는 망상/환각 등이 주증상인 정신질환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 중 조현병이 가장 중증인 상태

살인 범죄율의 경우 이보다는 더 관계가 있어서, 조현병 환자(정신증 제외)가 살인범죄를 저지를 확률이 0.3%로 일반인구 0.02%보다는 확실히 많이 높다고 해. 그렇지만 절대 숫자를 고려하면 많은 비중은 아니지. 확률로도 조현병 환자의 99.7%는 살인범죄자가 아니고. 또, 알콜이나 마약 등의 물질남용을 겪는 환자도 살인범죄율이 조현병 환자와 같은 0.3%쯤 된다고 하네. 이 논문이 부족한 점도 많을 테니, DSM-5라는 정신질환 진단 기준***해설을 보면, 조현병 환자가 공격성을 갖는 경우가 분명 간혹 존재하지만 대다수가 외려 훨씬 높은 확률로 폭력의 희생자가 된다고 쓰여있어.
***사실 조현병이라는 것도 생물학적 공통성이나 병인과는 전혀 상관없이 DSM이라는 미국 정신의학회에서 발간한 체계에 의해 주 증상을 중심으로 규정, 진단되고 분류된 거야. 개정때마다 임상적 유용성이나 예후와 관련한 내용을 반영한다고 하지만, 양상과 예후 예측에 있어서 본질적인 한계가 있겠지.

물론 니가 조현병 환자에 대한 일반화나 이 사건을 조현병 프레임으로만 해석하려고 하지 않았다는 걸 충분히 알아. 한쪽으로만 기우는 프레임은 어느 쪽이든 경계해야 겠지…. 다만, 내 귀에 도청장치가 있다고, 팔이 말을 한다고 얘기하는 우리가 보기엔 정말 무시무시하고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가늠조차 안 되는 증상을 가진 조현병 환자들 대부분은, 이번 사건과 같이 타인에 대한 극단적 폭력을 저지른 경우와는 별개라는 것을 한번 말하고 싶었어. 조현병은 ‘망상/환각/와해된언어를 주증상으로 하는 병(세부 기준이 많지만 생략)’일뿐, 망상이나 환각의 실현, 망상의 내용(폭력성) 같은 건 다른 이슈이고 다분히 사회적, 개인적 맥락을 따를 수 있다(이 주장은 살짝 조심해야 할 것 같지만ㅎㅎ)고 나도 오늘 생각해봤어.

조현병 증상이 워낙 비일상적이고 조현병 환자들 상당수가 병식이 없다 보니, 물질남용 같은 범주의 정신질환에 비해 부풀려져 사실 이상으로 더 무시무시하게 보일 소지도 많은 것 같아. 하지만 뇌의 어떤 부분이 아파서 범죄를 일으킬 수 있다는 이해가 역으로는 커뮤니티에 편입되기 어려운 대다수의 조현병 환자들에게 어떤 낙인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나의 이런 과한 노파심은 대다수 조현병 환자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 생물학적 이유에 의한 이상한 증상들로, 자신을 항변하기엔 너무나 약자이기도 해서… 

학문적 차원에서 내 추가적인 의문은 조현병 환자들의 범죄에서 나타나는 망상과 범죄의 질적 연관성에 비해 조현병의 환자의 범죄율(양적 연관성)이 생각보다 낮다는 점이야. 피해망상이 굉장히 흔해서, 조현병 환자들에 의한 범죄 면면에서는 망상과 범죄가 굉장히 깊게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았거든. 묻지마 살인범죄를 일으킨 조현병 환자가 '날 보고 비웃는 것 같아서'라고 진술한 사례도 있고. 그렇지만 통계는 그런 질적 연관성을 썩 강력히 양적으로 지지하진 않고 말이야(일반인구집단에 비해 훨씬 높긴하지만). 
물질남용 질환자들이 동일한 수준의 범죄율을 갖는 다는 사실도 좀 놀라워. 물질남용은 흔히 알콜중독 같은 건데, 알콜중독이면 물론 술이 충동성을 강화(?)했을지도 모르지만 어떤 공격성이나 범죄와 질적 차원에서 크게 연관되는 것 같지 않은데 말야...

+ 아래 기사를 읽고 마음이 무거웠어. 구체적인 살인충동은 다른 문제겠지만, 여성을 향한 범인의 왜곡된 분노와 조현병의 망상 증상 사이에서 아주 강력한 질적(정성적) 연관성을 보이니...


결론적으로 어느 프레임이든 하나로 단언되는 순간 본질과 멀어지겠지. 이 끔찍한 사건의 진정한 전말, 그 사람의 삶 속에서, 뇌에서 어떤 끔찍한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기란 참 어렵지. 그날 희생당한 분이 너무나 안타깝고 또 우리사회의 에너지가 소모적인 곳에 쓰이는 것이 안타깝고… 하지만 이러한 논의들 끝에 여성 혐오가 공론화되고, 여성과 남성, 각기 다른 젠더가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해 경험과 생각을 공유하고 조현병 환자들의 치료와 관리, 구성원으로서의 위치, 정신질환자의 범죄에 대한 처벌 등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생기고- 하게 되는 거겠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