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처럼 미내니가 한국에 왔다.
(농담같은 특별한 일이 있었다. 그에 대해서는 따로 기록하겠지만 농담처럼 허락된 선물이었다.)
급하게 휴가를 쓴 미내니는 "Convey my congratulation to your wife"라는 보스의 답을 받고 나와 함께 어지러운 방에서 한국행 짐을 쌌다.
JFK에서는 팜 그릴이란 식당에서 랍스터 숩과 스테이크 샐러드로 배를 채웠다.
열네시간 비행은 여유로운 아시아나라도 여러번 할 것이 못된다.
도착한 첫 날엔 무얼 먹었더라?
삼일 남짓의 짧은 시간이 너무 소중해서 한 끼 한 끼가 모두 신중했다.
아! 내가 시청에서 맛있게 먹었던 사누끼 우동집의 여의도 점에 갔다. 또 하나의 감상을 공유했다.
멜라토닌을 먹고 한들한들 취해 잠들고 아침이 밝았다.
둘째날은 (사실상 첫날) 전날 포장해온 크로아상과 살구쨈빵을 먹었다. 우유도! 아 나 혼자 가던 집앞 카페에서 커피 한잔, 샌드위치도 추가!
딩굴거리다 길을 나선 우리의 목표는 내일을 위한 미내니의 옷가지! 주인공은 나지만 미내니 옷만 주구장창 산 날이었다.ㅋㅋ 내가 항상 미내니 옷을 구경하러 서성거리는 코엑스 지오다노가 첫번째 목표!
스윽 톤다운 핑크셔츠에 눈도장을 찍었다.
미내니가 여름 캐주얼 마이가 필요하다고해서 사실 한번도 맘에 든적이 없는 자라에서 잠깐 방황하다가 (어김없이 방황한다.) (옷대비) 비싼 가격에 입을 떡 벌리고 나왔다. 사실상 뉴 마이를 포기한 미내니와 함께 박보검!!이 모델인 타운젠트로 들어갔다. 처음에 걸친 여름 마이는 바로 미내니의 옷이었다! 곤색 린넨 마이도 이뻤지만 모시모시한 블루 마이가 참 멋졌다. 세상에나 가격도 세일을 많이해서 우리의 예산에 맞았다! 게다가 나는 혹시나 역시나 스킬을 시전하여 40% 할인을 50% 할인으로 해내는! 기염을 토하고 만다. (이럴 때 우리는 크으, 취한다 원뽕~! 이라고 외친다.)
이제 다음 목표는 곤색 면바지다. 어제 미국에서 가져온 곤색 면바지에 세상에 구멍이 뚫려 있는 게 아닌가. 정말이지 내가 아니면 옷을 사지 못하는 미내니다. 무인양품에도 들렀지만 비슷한 품질에 더 저렴한 지오다노로 낙점! 아까 찜해둔 핑크셔츠와 함께 구입했다. (물론 사이즈가 없어서 다른 매장을 찾는 수고까지 감수했다.)
(참, 우리둘의 쇼핑은 늘 너무나 즐겁다. 사는 행위 자체가 즐겁다기 보다는, 어차피 사야 할 것이 있을 때 '고르는 과정'이 즐겁다는 얘기다. 둘다 패셔니스타는 아닐지언정 색이나 질감 핏에 대해 굉장히 센시티브한 구석이 있어서 우리둘에게 의류 쇼핑은 박물관을 관람하며 이러쿵 저러쿵 하는 바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전시품이 다르지만...) ㅋㅋ 특히나 나는 내 옷 고르기에 젬병이고 미내니는 본인옷을 '안사기' 때문에 서로의 옷을 사는데 서로가 꼭 필요하다. 아, 참고로 우리 상당히 냉정하다. 냉정한 분석이다.)
참 그 사이에 먹은 점심은 Classic, 하동관이었다!
저녁은 간장게장!!
미슐랭 네임드! 꽃지! 처음가본 곳이었는데 매우매우 만족했다. 간장 향이 지나치게 독특하거나 강하지 않고 매우 전통적이었는데 딱 맛있었다. 특 아니라 일반만 되어도 아주 훌륭한 것 같다. 덤으로 정말 친절하셨다. 너무나 만족!
셋째날은, 아침부터 분주했다. 그와중에 미내니를 장보라고 내쫓아서(!!) 나의(우리 집안의) 특제 소고기콩나물된장국을 끓여주었다. 된장국. 성곡적. 꼬리꼬리한 김치를 잔뜩 경계하던 미내니는 대통령 상에 오를만한 김치라며 감동해마지 않았다.
이날은 대망의 날이었으니까. 여기에서 쓸 내용이 아니다. 너무나 엄청났고, 엄청났다. 세상에나.
우리는 그일을 치르고 돌아오는 길에 내가 선물받은 그 감사한 글을 소리내어 읽었다. 읽고 또 읽었다! 우리의 celebration은 와인 한잔, 맥주 한잔, 멋들어진 레스토랑, 화려한 선물은 아니었지마는 그와는 비할 수 없는 소중한 교감이었다. 그 글을 이 맥락에서 이정도 크기의 기쁨으로 기억하고 곱씹은 사람은 둘밖에 없다. 또 그렇게 한층 더 대체불가한 존재가 된다.
넷째날, 아침에 교회에 갔다. 서로의 부재에 대해 생각하고 우리 두사람 그 공동체의 부재가 우리에게 미친 영향을 생각했다. 끝나고 나의 이벤트를 정말 엄청나게 기뻐해준 사람들에게 축하를 쑥스럽게 한 껏 받고서 점심을 함께 했다. 종각에서 다시 둘이된 우리는 공부를 하겠다고 했으나 실은 너무 피곤했다. 마음에 여유도 없었다. 큰 일들이 지났기 때문이다. 너무 많은 사람을 만나기도 했다. 둘이 있으면 조금도 지치지 않는데, 둘에서 커지면 너무나 쉽게 피곤해지는 우리다. (설령 그 만남이 좋은 만남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ㅎㅎ)
저녁엔 미내니네 가족을 만났다. 즐거운 시간이었다. 사랑이 있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저녁-밤엔, 또 둘이 되었다.
사실 나는 이날 저녁 (어제 저녁)에 대해 쓰기 위해 이 긴 글을 시작했다.
미내니는 짐을 싸야했지만 실은 미내니가 떠난 뒤 홀로 해내야할 나의 일들을 최대한 함께 처리해주려고 했다. 우선 제본집에 갔다. 노량진에 (일요일에도) '종일' 문을 여는 제본집에 가서 실기 시험 대비 자료를 잔뜩 인쇄했다. 그러고선 둘이 늦여름 밤 바람을 맞으며 걷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를 얘기했다. 노량진 다이소에 들어가서 수세미 따위를 사가라는 나의 채근을 적당히 자제시키며 돌아다녔다. 내가 혼자 공부하던 곳, 혼자 밥을 먹던 거리를 함께 둘러보았다. 우리가 떨어져 있는 동안 피부에 닿는 듯 알아챌 수는 없었던, 수화기, 채팅방 너머로 어렴풋이 짐작하던 나의 일상을 쭉 둘러보았고 그곳의 나를 상상하고 이해했다. 우리 둘이 떨어져 있는 동안 얼마나 많은 '서로가 모르는 서로'가 존재해왔는지를 얘기하고 느꼈다. 소중한 순간들이었다. (중간에 눈물을 왈칵하고 청승을 떨었지만, 그리고 시시때때로 둘이 눈물을 글썽였지만 ㅎㅎ)
돌아와서는 부지런히 짐을 쌌다. 진공팩에 베개 싸고 옷걸이 넣고 난리도 아니었다. 밤이 길었다.
오늘 아침에는 새벽 4시에 잠이 깨었다. 유달리 코고는 미내니를 잠시 바라보다가 한시간뒤 일어난 미내니 앞에서 마음이 슬프다며 왈칵 울고 토닥토닥을 받고 (다행이다. 이왕 울거면 둘이 있을 때 우는 게 낫다!) 짐을 챙겨 함께 나왔다. 함께 지하철역에 가서 미내니는 미국으로 나는 고속터미널로 향했다.
덕분에 그 붐비는 고속터미널 스타벅스의 유일한 손님도 되어본다. (지금은 벌써 많은 사람들이 왔지만)
선물같은 며칠.
미국에서 함께한 것도 물론 함께한 시간이지만, 이렇게 같이 한국에 올 수 있게 되고 (꿈처럼 뜻밖의 기회로) 지극히 일상적인 시간과 공간을 함께한 일은 정말 크나큰 위로였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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