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독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Being Mortal)/ 아툴가완디

무대 2015. 11. 9. 22:12


모처럼 완독한 책. 번역 제목은 '어떻게 죽을 것인가', 원제목은 'Being mortal'이다. 원제목의 직역 '죽을 운명이라는 것' 혹은 '영원히 살 수 없다는 것' 등이 훨씬 책이 담고 있는 통찰의 근본에 가깝지만(그래서 나는 이쪽이 훨씬 맘에 들지만), 나름 대중적으로 무난하게 접근할 수 있는 제목을 택했다는 생각이 든다. 길게 감상을 나누고 싶지만 시간이 없어 짧고 딱딱한 메모만 남긴다.

삶과 죽음에 관한 의사들의 배타적 경험에 대한 기술에 그치는 그렇고 그런 교양서가 아니라, 좋은 문장과 탁월한 통찰로 인류- 동시에 개인이 마주하는 삶과 죽음에 관한 모순적인 윤리적 문제들을 너무나 솜씨좋게 다루어 내었다. '글쓰기'면에서도 배울 점이 많다.

현대의학(특히 현대의학이 정복하지 못한 '암'치료에 있어서)은 패기 넘치는 도박가이다. 표준 치료에 이용하는 항암제에 대한 기대 반응률은 50%를 훨씬 못미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지만 병원은 환자에게 yes or no의 선택을 강요하며 이게 '최선'인데 이밖에 어떤일을 할 수 있겠냐며 항변한다. 환자 대부분은 100%이상의 기대를 안고 치료에서 치료로 떠밀리다가 확률상의 한 데이터로 생명을 마감한다. 다른 치료들에 비해서 현대 의학이 획득한 성적이 더 낫다고 해서 한 개인에게 100 or 0인 생명의 문제가 그래프상 한점으로 간단히 환원될 수는 없다. 바뀌어야 하는 것은 먼저 의사의 역할이다. 저자가 소개했듯 A하든지 병원나가든지 식의 가부장적 의사, A,B,...,Z의 option이 있으니 알아서 선택하고 책임지라는 informative한 의사가 아니라, 환자의 근본적인 욕구와 필요를 묻고 이해하며 그에 비추어 전문지식을 해석해내는 interpretative한 의사가 필요하며, 죽음을 앞둔 이에게 '생명연장' 이외의 욕구가 존재함을 인지하고 존중할 줄 아는 의사이다.

+ 2015/11/24 추가사실 죽음에 관한 생각은 한 차원을 넘어서면 이런 고민이 다 무의미해질만큼 심플하다. 사람은 반드시 언젠가 죽는다. 그리고 그 사실은 절대 내가 어찌할 수 없다. (이건 좀 더 나아간 것이지만, 죽음을 늦추려는 노력마저도 포함하여 계획된 죽음의 시점이 존재할 것이다.)

+ 2016/05/24 항암제에 대한 매도도 조금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누가 차악인걸 모르나. 나의 항암제에 대한 분노는 현대의학이 줄 수 있을것이라 생각했던 어마어마한 능력에 대한 기대가 컸던 탓 딱 그지점 아닐까. 모든걸 받아들인다면 과연 마이너스인 걸까? 정신과 치료랑은 뭐가 다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