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출산의 밤 ①편
왠지 출산 이야기를 먼저 적고 싶다.
임신하고서 깨달은 건데 안 묻고 안 들어서 그렇지 아이를 낳은 여성들은 저마다 엄청나게 화려한(!) 출산의 무용담, 끊이지 않는 에피소드들이 있었다! 임산부인 내가 궁금해할 때, 그들이 눈빛을 반짝이며 공유하는 그 날의 급박한 전개 혹은 지루하고 고생스런 진행 같은 것들을 듣고 있노라면 내가 모르거나 무관심하던 사람들의 삶의 결들이 얼마나 다채롭고 강렬한지를 새삼 느낀다.
나의 예정일은 11월 26일.
그 예정일보다 2주 정도 일렀던, 38주 2일차 목요일이었다. 몸이 많이 무거워지긴 했지만 (자기도 편히 쉬기도 힘들지만 그것은 만삭의 디폴트이다), 나의 임신은 신체적으로는 아주 순탄했다. 35주까지 헬스장에서 운동을 했었고 여전히 매일 출퇴근 중이던 상황. 몸이 점점 더 힘들어졌고 출산 준비를 할 여력이 없었기에, 그주 목요일, 금요일을 마치면 39주부터 예정일까지 한 주 정도는 본격적인 출산 준비를 하며 재택근무를 해야지! 드디어 좀 쉬어야지! 하던 상황이었다...!
그 목요일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는데 골반뼈 쪽이 너무 불편하고 아파서 어기적어기적 움직였다. 남편한테 아프다고 말한 뒤 또 적당히 괜찮아져서 (여전히 아팠지만) 클리닉에 출근을 했다. 환자를 몇 봤던가, 오전 근무를 마치는 와중에 화장실에서 새끼 손톱만큼 살짝 피가 비친 걸 확인했다. 이게 말로만 듣던 이..슬? 이라고 하기엔 사실 점액성이라는 이슬과는 너무 다른 짙은 소량의 출혈. 생리혈과 비슷했다. 여하튼 처음으로 피 비스무리한 걸 보니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골반뼈도 계속 조금씩 아팠다. 컨디션이 안 좋아서 오전 supervision에 참여하지 못하겠다고 교수님께 말씀드리고 양해를 구하고 조금 일찍 클리닉을 나왔다. 나를 데리러온 남편한테 상황을 말하고 (11월부턴 남편이 출퇴근 운전을 해주고 있었다!) 우선 점심 때 집에 가서 쉬기로 했다. 주기적 통증은 전혀 없이 골반 뼈쪽이 불편한 것 뿐이었으므로, 만삭으로 가까워질 수록 있는 신체 변화이겠거니 했던 것 같다. 그날 오후 클리닉에 환자 예약들이 꽤 있었지만 (ㅠ 마지막으로 보게 되는 환자들도 있어서 웬만하면 출근을 하고 싶었지만...) 오후에 클리닉에 다시 갈 컨디션이 안돼서, 쉬어야 겠다는 생각에 급작스럽게 이메일로 call sick 을 했다. 그리고 그날 오후는 휴식! 휴식 했더니 몸이 훨씬 나아졌고 아침의 골반뼈 통증도 많이 나아졌던 것 같다. 간간히 소량의 피비침이 있었지만, 만삭의 흔한 증상이려니 했다.
그날 저녁엔 스시를 사다 왕창 먹었던 것 같다. 갑자기 스시가 땡겼다. 날생선 매니아인 나는... 임신 중에도... 날생선을 엄청 먹었는데... 믿을 만한 레스토랑에서 (우리의 훼이보릿 시마스시!) 적당량 먹으면 괜찮겠지, 생선이 얼마나 몸에 좋은데 하며 먹었다. 미국 애들한텐 차마 말도 못했는데, 많은 이들이 와우 뤼얼리 하는 상황이기 때문 ㅋㅋ
여튼 잠을 자고 다음날 일어났고, 출혈로 미루어보아 그래도 한 일주일 안에 분만을 하려나? 생각이 들었다. 가진통이라고 할만한 복통도 전혀 없었다. 금요일 아침엔 목요일 아침의 골반뼈 통증도 꽤 나아졌고 (혼자 걸을 때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무사히 출근해서 하루 클리닉 일정을 다 마칠 수 있었다. 환자들에게 이제 출산휴가 들어간다고 인사도 하고, 인수인계도 하고 잘 마무리한 하루였다. 그날 동기한테 I feel like my delivery is impending.../나 왠지 곧 분만할 것 같아... 라고 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클리닉 디렉터 한명이 너 다음 주에는 재택으로 가능하지? 했을 때, 물론이지 애만 안 나온다면... 그런데 나 분만이 머지 않을 것만 같아... I feel some signs of delivery... 라고 말했던 것도 기억이 난다. 그때만 해도 그렇게 impending/임박한지 몰랐지...
4시쯤 퇴근! 데리러온 남편이 컨디션을 물었는데, 소량의 피비침은 있지만 괜찮다고 했던 기억. 그리고 이제 아마도 다음주에! 며칠 후에! 분만을 하게 된다면, 좋은 레스토랑 한동안 못갈 테니 가보고 싶던 프렌치 레스토랑에 가자! 했다...ㅋㅋ 그리고 우리는 프렌치 레스토랑으로 출발! 만삭의 몸을 어기적어기적 이끌고 퍼블릭 마켓 쪽 큐어라는 레스토랑에 가서 레스토랑의 시그니처 메뉴들인 pear salad, grilled brie cheese, steak 를 먹었다. 스테이크는 우리가 먹었던 레스토랑 스테이크 중 젤 맛있었다. 뉴욕시티 포터하우스 스테이크보다 우리 취향저격! ㅋㅋ 아주 만족스럽게 먹고, 우리답지 않게 드링크도 논알콜 칵테일로 시켜먹고 그렇게 집으로 향했다. 그때가 아마 금요일 저녁 6시쯤이었을 거다.
집에 와서, 급 출산 가방을 마저 싸야 겠단 생각이 들었다. 나의 본능이 무언가를 예견했던 것인가... 사실 남편이 여지껏 싸놓은 것이 대충대충이라 처음부터 다시 싸며 잔소리도 하고, 본격 짐싸기를 하던 기억... 그러다가! 배가 좀 아프기 시작했다. 배가 좀 주기적으로 아프기 시작했다... 하핫 꽤나 아팠는데도 처음엔 대략 간격이 멀었으므로 (30분 간격이었으려나?) 긴가 민가 했다. 이게 진통이야? 왠지 그정도 까진 아닌 거 같은데 (진통을 겪어본 적은 없지만 ㅋㅋ) 에이 이게 가진통인가보다~ 하고 짐을 쌌다. 그러다 통증이 거의 10분 간격이 됐다. 남편한테 가진통엔 따뜻한 샤워가 좋대~ 하며 샤워를 했다. 배가 주기적으로 아플때마다 따뜻한 물을 배에 쐬어가면서 긴~ 샤워를 했다. 왠지 샤워를 하니 배아픈게 조금 덜한 느낌적 느낌이 들었지만 ㅋㅋㅋ 그것은 그냥 내가 통증을 잘 참기 때문인 것이었다.
긴 샤워를 마치고 나오니 갑자기 배가 더 자주 아픈 느낌이 들었다. 응? 어플로 체크해보니 5분간격인거 같은데... 잘 모르겠다 이게 진통 맞아? 하면서 체크해보니 간격은 빠르지만 아무래도 진통 한번의 길이는 1분이 채 안되는 것 같아서, 산부인과에서 알려준 5분 간격, 1분 지속 보다는 약한(?) 것 같았다. 이때부터 나의 현실부정이 시작된 것 같다. 설마 아니 이게 진통이야? 라는 느낌과 마음 한 켠에 헐 진짜 이렇게 진통해서 벌써 애를 낳는다고? 하는 쌔한 느낌. 다음 주 한 주 편히 쉬면서 준비하려고 했는데, 일도 마무리하고 짐도 여유있게 싸고 애기방도 더 세팅하고 하려고 했는데 퇴근하자마자 파인다이닝 다녀와서 급 애를 낳는다고? 하는 이 인지부조화. 그리고 사실 연구 관련 일해야 하는 급한 일 & 미루고 있는 일이 있었는데, 다음 한 주간 여유있게 마무리할 계획이었는데- 그걸 못했다는 압박감!! 현실 부정을 하면서 나는 남편한테 오빠 이건 가진통일거야 아닐까 정말 이게 진통이야? 하면서 난데 없이 노트북을 펴고 연구 관련 그 해야할 일을 시작하기에 이르렀다 ㅋㅋㅋ 나 이거 끝내야해 출산 전에.. 설마.. 나 이대로.. 출산? 여하튼 그러다보니 배가 한 번에 너무 아파지기 시작했다. 노트북을 덮고 침대로 갔다. 남편도 졸졸. 침대에 누워 진통을 체크하니 어? 4분 간격? 뭐? 3분 간격? 하지만 여전히 진통 한 번은 1분 미만이었고, 나는 이정도로 병원 전화해야해? 이러고 있었다. 남편도 어쩔줄 몰라하며 그래도 연락하자! 하던 중, 갑자기 그 4분 간격의 통증이 엄청 아파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제야 고민없이 이거 진통 맞나봐 ㅠㅠ 당장 전화해!!! 를 울부짖기에 이르렀고, 그 지경까지 참은 까닭에 진통이 올때마다 너무 아파서 울었다 ㅠㅠ 전화를 했더니 콜센터로 연결이 됐고 얼마 후 닥터 캐리가 전화가 왔다. 나는 그와중에 울먹이면서 아니 이게 4분 간격인데 하나가 1분보다 안길어서 진통인지 모르겠어 ㅠㅠ 했더니 닥터 캐리가 아니 너가 그정도로 uncomfortable하면 병원에 와야지~ 하셨다. ㅋㅋ 미국 병원이 웬만하면 돌려보낸다는데 나처럼 많이 참는 건 아닌거였다. 여튼 우리는 그날 저녁 따끈하게 싼 출산 가방을 들고 병원으로 직행!!
병원 응급실 앞에 임시 주차를 하고, 한겨울에 로비까지 걸어!! 갔다. 남편이 미리 병원 답사를 그 다음주에 할 예정이었는데 ㅋㅋㅋ 그랬다면 휠체어를 가지고 왔을텐데. 차에서 내려서 로비 안까지 가는 동안에 진통은 극에 달했고 나는 진통이 올때마다 추운 겨울 밖에 가만히 얼음처럼 서서 진통을 참고, 진통이 가시면 후다닥 걸어 움직였다. 퍼플 엘리베이터를 타고 하일랜드 병원 3층 분만실쪽으로 이동! 체크인을 하는데 그때쯤 나는 이미 제정신이 아닐 통증을 겪고 있어서, 체크인 해주시는 프론트 분이 엄청 어쩔줄 몰라하면서 빨리빨리해주셨다. 얼마 후 트리아지 룸에 가서 진통 모니터를 장착하고 의사를 기다렸다!!!
간호사에게 혹시 가정의학과 레지던트 말고 펠로우가 올 수 있냐고 물었더니... 오늘은 가정의학과 레지던트들 대신 산부인과/OB 레지던트들이 근무하는 날이라고 했다. 펠로우 레벨을 원하는 걸로 생각하시고 물어보시길래 아 사실 내가 가정의학과 레지던트들이랑은 같이 일한다... 고 했더니 아하(?) 했다. 하지만 뭐 진통이 오니 직장동료든 학생이든 와도 상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ㅋㅋ 얼마 후 OB레지던트 한명이 나의 첫! 내진!을 하러 들어왔다. 첫 내진을 할 때까지 긴장됐다. 그렇게 아팠으면서도, 아~ 이건 진진통 아니니까 집에가~ 할까봐 긴장하고 있는데 레지던트 왈 벌써 6-7cm열렸는데요~ 띠용. 그후 얼마 안있다가 닥터 캐리가 들러서는 아니 집에서 6cm열릴때까지 있다니 님 좀 대단! 어서 분만실로 갑시다. 해서 분만실로 갔다. 분만실까지는 또 걸어갔다. ㅋㅋ 휠체어 탈까하다가 휠체어가 좀 멀리 있대서 그냥 걸어가겠다고 했는데 아마 갈만 했나 보다.
여튼 분만실 베드에서 iv line잡고, 무통분만을 원한다고 했다. 그때는 이제 진통이 크레이지하게 오고 있어서 무통 맞기 전에 진통을 이미 대부분 경험해버린... 상황이었지만ㅋㅋ 너무 아파서 여튼 마취과 좀 빨리 불러달라고 몸을 옹그리며 말했다. 간호사도 나의 진행상황을 보고 최대한 빨리 무통을 어레인지 해주셨지만 어쩔 수 없이 조금 기다렸다. 느긋한 미국 개그맨같은 느낌의 남자 마취과 샘이 왔고 자세를 취해 침대에 앉았다. 무통을 놓는 와중에 진통이 와서 그때마다 너무 아팠지만, 절대 자세를 변경해서는 안된다는 일념으로 미동조차하지 않고 진통을 참았더니 마취과 샘이 베리굳이라고 하면서 무슨 일 하시냐고 뜬금없이 물어봤다 ㅋㅋ 정신과 레지던트라고 했더니 아 이제는 네 머릿속에 의사 마인드를 내려놓고 편히 환자가 되세요~ 이런 덕담(?)을 해주셨던 것 같다.
(나머지 이야기는 다음 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