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사랑의 방식이
때론 (진정한) 사랑의 방식이 내가 아는 사랑의 방식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게 가끔은 괴롭다.
(타인이 나를 대하는 방식이 아니라, 내가 타인을 대하는 방식에 대한 얘기다)
어떤 관계에서 혹은 어떤 순간에 건강한(혹은 진정한) 사랑은
얼마간의 거리와 가끔의 단호함, 종종 보여야할 냉정함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
마냥 퍼붓는 애정, 궁금함, 애틋함, 붙어 떨어지지 않으려는 완전한 종속 이런 것들이 두 사람 모두에게 안전한 사랑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이 가끔은 슬프기도 하다. 이 슬픔은 아주 날 것 그대로의 태아적 상태로 타인과 연결되길 소망하는 아주 어린 본능, 원초적 욕망같은데서 오는 것 같다. 더 잘 사랑하기 위해 얼마간 분리되어야 한다니...!
그러다보니 예전에 블로그에 남기기도 했던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본 지 오래되어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서로의 자아를 위태롭게 할 정도의 날 것 그대로의 사랑,
영화 <모디 Maudie>였던가, 두 사람의 사랑도 떠오른다. 끔찍한 손찌검과 철저한 구속이 깃들어 있던 관계,
그렇지만 선뜻 사랑이 아니라고 평가할 수는 없는 그 위험하게 딱 붙은 관계.
그 어떤 사랑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아주 작은, 한 움큼의 종속을 포함하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을 때, 그럴 수밖에 없는데, 그럼에도 건강한 사랑은 그 종속에 끊임없이 저항하는 서로의 자아를 확장시키는(스캇펙, 아직도 가야할 길) 형태를 지향해야하고, 그렇기에 사랑이 때론 거리를 두고, 사랑이 때론 냉정해질 수도 있나 보다. 존중을 담은 냉정 말이다. 그게 종종 불안한 나는 나 자신에게 존중을 담아 냉정해져 본다.